1억 명에 대한 폭력 탄압

지난 24년간 전 세계에서 일어난 종교 박해 중 최대 규모

중국에서는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단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감옥에 갇히거나 심지어 고문을 당하고 살해됐습니다(관련 통계 링크).

오늘날에도 중국에서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으며, 매일 중국 당국에 붙잡히거나 감옥에 갇히고, 고문 혹은 그 이상의 험악한 일을 당할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박해 이야기 중국공산당은 왜, 어떻게 파룬궁을 없애려 했나. (10분)

지금도 갇힌 수백만 명의 사람들

중국 내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파룬궁 말살 정책은 언제든 붙잡힐 위험 속에서 생활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일단 잡혀 들어가면 엉터리 재판을 거쳐 수년 간 고문과 가혹행위가 도사리는 감옥 생활을 하게 됩니다. 임시 수용소 혹은 지방정부의 불법 사설 억류시설인 ‘흑(黑)감옥’으로 보내집니다.

2013년, 중국의 노동교화소(강제노동 시설) 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수감자들은 하루 최대 20시간 무급 노동을 강요받으며 장난감이나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젓가락, 축구공 등 각종 수출용 공산품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를 거부하면 가혹한 고문을 받아야 했습니다(관련 링크 : 강제 노동).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대규모 구금과 수감은 미국 정부(국무부)를 비롯해 프리덤하우스나 국제앰네스티 같은 인권 단체, 그 외 많은 서방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보도가 이어져 왔습니다.

탄압 사례, 수련자 왕즈원 – 왕즈원(위 사진 속 남성)은 중국 베이징에서 탄압 초기 가장 먼저 체포된 수련자 4명 중 하나로 날림 재판에서 16년 형이 선고됐다. 이 영상은 그의 딸 다니엘(현재 미국 거주)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6분)

교육이란 이름의 세뇌 그리고 ‘전향’

노동교화소나 감옥, 특별 재교육센터에 갇힌 파룬궁 수련자들은 세뇌라고밖에 할 수 없는 ‘교육’을 받게 됩니다. 중국공산당의 목표는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폭로하는 일에 적극적인 다른 수련자들의 이름을 불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을 포기하고, 파룬궁이 위험하다고 시인하도록 하는 일도 포함됩니다.

중국공산당이 ‘전향’이라고 부르는 세뇌 과정의 핵심은 잠을 재우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파룬궁 비방 영상을 보여주고 문화대혁명식의 ‘공개 비판 투쟁’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전향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잘못된 정치사상’이라는 정신 장애 진단을 받고 정신병원에 끌려가 향정신성 약물 주사를 맞게 됩니다(관련 링크 : 심리적 학대).

이런 ‘전향’ 작업을 실제로 겪은 한 남성의 사연은 워싱턴포스트의 단독 특종으로 보도된 바 있습니다. 이 남성은 석방된 후 “지난 2년 동안 나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것을 목격했다. 우리는 정말 지구상에서 최악의 동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고문 체험자의 증언 – 베이징에서 감옥 생활을 경험한 파룬궁 수련자 천강 인터뷰 (4분)

유엔, 인권단체 보고된 각종 고문 행위

파룬궁 수련자들이 고문받고 있다는 보고는 2000년대 초반부터 주요 언론, 인권 단체, 유엔(UN)을 통해 다양하게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파룬궁 수련생 정보교류 사이트인 밍후이왕(Minghui.org)이 집계한 고문 사례는 최소 10만 건으로 실제 수치는 그 몇 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각종 고문 수법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가장 일반적인 수법은 전기 고문입니다.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찌르고 지지거나, 고통스러운 자세로 결박한 후 며칠 동안 방치하기도 합니다. 단식을 통해 저항 의사를 밝히면 코에 플라스틱 튜브를 꽂아 소금물 심지어 오물을 배가 터지도록 강제로 주입 당합니다. 날카로운 대나무 꼬챙이로 손톱이 떨어져 나가도록 손톱 밑을 찌르는 수법이나 성폭행과 성고문도 자주 보고됩니다.

실제 탄압 사례 – 중국 선양의 한 예술대학 회계부에서 근무하던 파룬궁 수련생 가오룽룽(37)은 고문 끝에 숨을 거뒀다. 생전 그녀를 찍은 사진은 극심한 전기 고문으로 얼굴 일부가 검게 탄 모습을 보여준다. (4분)

산 사람을 대상으로 한 강제 장기 적출

중국의 감옥에 갇힌 수많은 파룬궁 수련자가 마주하는 공산당의 잔인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다수의 제3자 보고서를 종합하면 수만~수십만 명의 수련자가 중국에서 거대한 산업을 이룬 장기이식수술에 필요한 장기의 공급원으로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산됩니다.

간, 신장(콩팥), 심장, 각막을 파룬궁 수련자들에게서, 그것도 살아있는 상태에서 적출해 중국공산당 간부, 중국의 부자 혹은 해외에서 원정 장기이식을 온 외국인들에게 판매합니다. 중국 병원 관계자와 신분을 위장한 조사원 사이의 전화 통화 녹취록에서는, 이런 행위를 자랑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관련 링크: 장기 적출).

캐나다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무장관을 역임하고 인권 활동가로 변신한 고(故) 데이비드 킬고어. 그는 중국에서 벌어지는 파룬궁 수감자들에 대한 강제 장기 적출은 중국 정부 책임이라고 말한다. 전체 영상 : 파룬인포TV

검열과 선전을 통한 폭력 조장

20세기의 모든 대량 학살에서 발견되는 한 가지 공통점은 극렬한 폭력에 앞서 ‘특정 집단’에 대한 비인간화가 선행됐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파룬궁에 대한 공산당의 탄압 정책 중 한 가지 핵심은 중국과 전 세계에서 파룬궁에 대한 정보를 제한하고 왜곡하는 것이었습니다.

탄압 첫날부터 정권은 파룬궁을 긍정적으로 다룬 모든 책과 미디어를 금지했습니다. 모든 관련 웹사이트가 즉각 차단됐고 수백만 권의 파룬궁 서적이 압수 소각됐습니다. 정권은 파룬궁이 건강하고 정상적인 일상 수련이라는 점, 수련자가 수백만 명에 달할 정도로 긍정적이라는 점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관련 링크: 중국 당국의 검열).

검열은 온라인 공간에서도 이뤄졌습니다. 서방의 기술기업들은 거리낌 없이 인터넷 감시에 필요한 기술과 장비를 중국공산당 정보기관에 팔아치웠습니다. 그 결과, 중국인들은 온라인에 고문에 관한 증거물을 올리거나 그저 파룬궁에 관한 문서를 다운로드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가게 됐습니다(관련 링크: 박해와 인터넷).

중국공산당은 대규모 흑색선전을 동원해, 파룬궁을 가까이하는 것조차 몸 사릴 정도의 위험하고 혐오스러운 무엇으로 여겨지도록 만들었습니다.

탄압은 장쩌민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주도했는데, 3개월 만에 파룬궁을 말살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그는 3개월이 넘도록 진전이 없자 ‘사이비(cult)’라는 딱지를 붙여 혐오 여론을 부추기기 시작했습니다. 공산당의 명령에 따라, 각 정부 부처와 관영매체에서 방송, 라디오, 신문, 자료물, 심지어 연극과 만화책 등을 통해 파룬궁을 악마화했습니다(관련 링크: 흑색선전).

세계 각국 정부에는 파룬궁에 관한 왜곡된 정보가 담긴 자료가 전달됐습니다. 또한 의원이나 지방정부 관계자들에게 파룬궁 탄압에 침묵하도록 하거나 파룬궁에 관한 지지를 철회하도록 했습니다. 수련자들의 거리 행사나 교류를 위한 자체 모임을 방해하고 금지하려는 시도도 포함됐습니다.

또한 기업가, 언론인, 학자들도 비슷한 압력이나 위협, 회유를 받았습니다(관련 링크: 해외를 향한 압력). 그 결과 서방 언론과 지식인들은 이번 사건에 관해 때로는 섬뜩할 정도로 침묵하기도 했습니다(참조 ‘왜 나는 이 소식을 듣지 못했나’).

탄압을 가능하게 한 흑색선전 – 수십 년에 걸친 중국공산당 당국의 거짓말과 은폐.

사회적 및 경제적 영향

중국 정부 집계 등에 따르면, 탄압이 시작된 1999년 하반기 중국 내 파룬궁 수련자는 7천만 명 이상 최대 1억 명으로 추산됐습니다. 이들 잠재적 탄압 대상자에는 당연히 공직자, 기업가, 지식인 등 중국 사회의 핵심 구성원도 포함됐고, 이는 탄압이 중국 사회 전반에 걸쳐 미친 파괴적인 영향력을 짐작게 합니다.

많은 파룬궁 수련자는 직장에서의 어떤 중요한 역할을 맡았든지 해고됐고, 학교에서는 퇴학 처분을 받았습니다. 의료 서비스와 연금 수혜 자격이 박탈되고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아야 했으며, 그 밖에도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받았습니다(관련 링크: 가정에 대한 탄압, 학교와 직장에서의 탄압, 파면).

자발적인, 평화로운 저항

1999년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명상 수련을 하는 수천만 명의 중국인들은 선택에 직면했습니다. 하나는 중국공산당에 굴복하고 건강과 평온, 희망을 준 수련을 포기하는 것, 다른 하나는 외부 활동을 삼가고 집에서 조용히 수련을 지속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당국은 철저한 수색으로 파룬궁 수련자를 색출했고 불시에 자택을 급습해 수련자와 그 가족, 지인들까지 피해를 줬습니다.

마지막 선택은 박해에 공개적으로 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선택했든 오늘날 분명한 것은 모두가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에도 중국에서는 수천만 명이 여전히 수련 중이며 새롭게 수련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늘 나타나고 있습니다.

공개적인 저항을 선택한 파룬궁 수련자들은 시종일관 폭력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 대신 가능한 모든 평화적 수단을 사용하여 목소리를 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처음에는 편지와 청원을 통해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와 이성적인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소용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고 수련자들은 베이징 톈안먼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톈안먼 광장은 역사적으로 소시민이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최후의 공간으로 인식돼 왔기 때문입니다. 수련자들은 광장에 앉아 고요히 명상하거나 ‘진선인(眞善忍, 진실·선량·인내)’ 등이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거리를 지나는 중국인과 세계 각국 지도자의 양심에 호소했습니다.

그럼에도 박해가 계속되자, 파룬궁 수련자들은 전단, 영상(CD), 이메일, 전화로 박해의 진실을 알리는 메시지를 퍼뜨리면서 국가 권력의 대대적인 흑색선전에 맞섰습니다.

이러한 저항은 커다란 위험을 무릅쓴 개인적 행동으로 이뤄져 왔으며, 전반적으로 살펴본다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비폭력 운동일 것입니다(참조 ‘평화적 저항’).

단편: 파룬궁 수련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는지, 공산당의 인권 탄압을 알리는 싸움은 왜 중요한지. 풀 영상: 파룬인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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