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超常)…평범함을 초월하다
중국에는 초상(超常)이라는 개념이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뛰어나다, 보통을 뛰어넘다' 정도의 의미로 쓰이지만, 실은 그 역사가 매우 깊은 단어입니다. 중국 문명은 그 오랜 세월만큼이나 범상함을 뛰어넘어 높은 경지로 올라가려는 사상적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무협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중국의 오악(五嶽·이름난 다섯 산)은 태산, 화산, 형산, 하안, 숭산을 가리키는데 이들 오악은 높거나 험준하거나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닦는다는 ‘자기 수양’ 문화와 관련됐기에 숭고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전설적 불교 사원인 소림사가 숭산에 있는 것도, 도가(道家)의 대표적인 문파인 화산파가 화산에 자리를 잡은 것도 그저 우연이 아닙니다. 과거 깨달음 얻고자 했던, 더 높은 경지를 바라봤던 구도자들 오랜 전통에 따라 속세를 벗어나 산으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수양이라는 문화적 전통은 현대 중국에서도 사회 저변에서 그 흐름을 이어왔습니다. 이는 1990년대 발생한 ‘파룬궁 현상’의 배경이 됐습니다.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수천 년의 전통이 거의 끊길 뻔했지만, 중국인들은 파룬궁이 등장하자 중국 문명의 핵심인 자기 수양의 문화가 되돌아왔음을 단박에 알아차린 겁니다.
사람은 진선인(眞善忍, 진실 선량 인내)의 원칙에 따라 자신을 절제하고 수양함으로써 평범한 존재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게 파룬궁의 가르침입니다. 경지가 올라가면 평온한 내면에서 오는 유유자적함과 어리석음에 휘둘리지 않는 통찰로 항상 즐거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를 불러오려면 주로 도덕적으로 견고한 삶, 오랜 세월 계승된 명상 수련법이 필요합니다. 중국인들은 예부터 수행에 성공한 사람을 ‘득도한 사람’ 혹은 ‘초월한 사람’, ‘깨달은 사람(각자)’ 등 여러 이름으로 불러왔습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4세기부터 깨달은 사람에 대한 문헌적 기록이 등장합니다. 유쾌한 철학으로 유명한 도가의 대표적 인물 장자(莊子)인데, 그의 책에는 한 스승과 제자의 대화가 나옵니다. 어느 날 제자가 광인에게 들었다면서 스승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막고야산에는 신인(神人)이 살고 있는데, 살결이 눈처럼 희고 우아함과 기품은 처녀와 같으며, 곡식을 먹지 않고 공기와 이슬만 먹는다고 합니다. 용과 함께 구름을 타고 사해(四海·온 인간세상)를 다니며 우주 만물이 규율에 따라 순행하고 풍년이 들도록 한다고 합니다.”
제자는 믿지 못하겠다며 한 말이었지만 스승은 세상에는 자신의 지식 범위 밖의 일들이 존재한다면서 “신인의 덕은 세상을 감싸 하나로 만든다”는 가르침을 전합니다.
그 후 수백 년이 흐른 한나라 때에는 하늘(천상세계)과 땅(인간세계)은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이어져 있으며, 인간세계에서 도를 따르고 덕을 기르면 천상세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해졌습니다. 그를 위한 여러 가지 심신 수련 방법들이 전해졌고 성행했습니다.
자기 수양을 위한 방법들
중국 문명에서는 영혼의 존재만큼이나 그를 담고 있는 그릇인 육체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미국의 유명 도교 연구학자인 리비아 콘(Livia Kohn) 전 보스턴대 교수는 “신체 운동은 도(道)를 향한 적극적인 첫걸음”이라며 “몸을 건강하게 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도의 자유로운 흐름에 몸을 열어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자신이 태극권, 요가 수련자였던 콘 전 교수는 “중국의 도교 수행자들은 신체를 수련의 기초이자 근본으로 삼았으며, 육체를 본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신성한 사명의 하나로 추구했다”고 밝혔습니다. 즉 몸과 마음을 함께 닦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처럼 심신(마음과 몸)이 긴밀하게 연결됐다는 개념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던 개념입니다.
미국의 종교학자 러셀 커클랜드(Russell Kirkland)는 이러한 접근 방식을 “생체적 영성(biospiritual) 수련”이라고 칭했습니다. 신체와 정신이 별개가 아니며 모든 영성은 생체적(물질적) 요소가 동반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상대적으로 신체에 주목하지 않은 서방의 종교 수행과의 차별점입니다.
중국에서는 다양한 심신수련법이 전해졌고 연구, 개발됐습니다. 호흡 조절, 식이요법을 비롯해 단식, 명상에서부터 태극권과 같은 동작 수련, 심지어 약재를 먹는 방법도 동원됐습니다.
대다수 수련법은 눈으로는 포착되지 않지만, 신체를 구성하는 본질과 생명 에너지의 균형을 회복하고 순환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건강을 되찾고 증진하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는 무술뿐만 아니라 검술, 활쏘기, 서예,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도 확대됐습니다.
여기에서 더 집중적인 훈련과 강화된 방식을 적용하고 엄격한 도덕적 규율을 결합하면 자기 수양(self-cultivation)의 단계에 이르는데 콘 전 교수는 “수양이란 행동과 전진, 발전과 향상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녀는 “그것은 지속적인 과정”이라며 “자신 자신과 세계관에 대해 도전해야 하고, 단계마다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절대 만족스럽지 않고 완성되지 않는다. 항상 그 위에는 더 높은 신성한 이상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방 종교에서도 육신의 경건함을 강조하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방탕하고 나태한 생활을 경계하지 않으면 영적인 깨달음을 얻는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합니다. 다만 서방 종교에서는 육신보다는 영적인 경건함을 더 강조합니다.
이는 동양의 청렴함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체 단련만으로는 경지에 이를 수 없으므로 도덕성을 지키며 행동이나 몸가짐을 바르고 깨끗할 것을 요구합니다. 서방의 경건함과 서로 통합니다.
즉, 중국의 수련은 신체의 에너지와 정신적 향상 두 가지를 동시에 주목했습니다. 중국 당나라 때 의학자 겸 단전호흡 대가였던 손사막(孫思邈)은 “정신을 안정시키려면 먼저 원초적 에너지를 가다듬어야 한다”며 “체내의 에너지가 바다를 이루듯 충만하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정신은 안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수련은 현실도피일까?
오늘날 서방에서 요가는 체중 관리와 아름다움을 위한 생활 체육에 가깝지만, 원래 인도의 요가는 깨달음을 위한 고된 수행의 한 방식이었습니다.
중국의 수련도 매우 높은 수준의 의지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여기에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수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집안의 뒷받침도 필요했기에 고대 중국에서는 상류층 자제들이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였습니다.
이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수련하는 이들도 생겨났습니다. 어떤 구도자들은 밧줄을 타고 동굴에 들어간 다음 밧줄을 끊어버리고 굶주림과 싸우며 수련했고, 어떤 이들은 ‘연금술’을 이용해 독성이 들어간 약물을 복용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도피가 아니라 그 자신이 직시한 가장 절박한 현실, 즉 존재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주어진 운명에 따르는 대신 생명이 남아 있는 한 답을 얻으려 도전했던 용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자기 계발서, 따뜻한 이야기를 모은 서적에서는 그저 자기 자신에 충실한 것만으로 더 나은 삶의 단계에 올라설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상업적 의도를 품은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늘어놓는 ‘엉터리’라고 종교학자 커클랜드는 말합니다.
커클랜드는 “정신적 목표를 달성하는 일은 그냥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다”라며 “(이런 서적에서는) 스트레스 해소, 수면의 질 향상 심지어 복근 만들기 같은 부차적 효과를 강조하지만, 본질은 노력과 헌신, 이기적 자아의 희생을 통해 고도의 과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수련 성취란 “도덕적, 영적, 인지적 성장이 반드시 전제되는 것”으로 세상을 등지고 느긋하게 지내다가 저절로 얻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일본 교토대학의 중국 의학사 전문가인 아카호리 아키라(赤堀昭) 약학박사는 “수련 성취는 완전한 헌신, 세속의 일체에 대한 극복,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이 없는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의 수련인들은 하루 열두 시간씩 경서를 읽거나 좌선하고 엄선한 음식 혹은 약재를 복용했습니다. 이는 깊은 산 속 암자나 깊은 동굴, 수도원에서나 가능했으며 오랜 수련 기간에 단 한 번만 실수하거나 방해를 받아도 되돌릴 수 없는 고된 여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수련했을까요. 종교학자 커클랜드는 “수련은 세상의 더 깊은 현실을 부지런히 갈고 닦아 고귀한 존재적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했고, 아키라 박사는 “그 보상은 육체와 정신의 완전한 자유이자 하늘과 땅에 버금가는 불멸”이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이름을 달고 거리로 나온 수련
마오쩌둥 사망 이후 1980년대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1966~1976)으로 파괴된 전통문화에 대한 보상 심리와 함께 태극권으로 대표되는 기공(氣功)이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기(氣)에 대한 과학적 연구, 국가의 승인, 맨손으로 공원에서 손쉽게 따라 배울 수 있다는 접근성에 힘입어 현대판 불로장생 열풍이 불었습니다. 이는 종교적 헌신이 필요한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과거의 심신수련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성이었습니다. 1980년대 중국의 기공 열풍은 철저히 대중적이고 세속적이었으며 지극히 평범했습니다.
기공이란 용어는 1951년에 처음 생겨난 신조어입니다. 가리키는 것은 대상은 중국의 문화유산인 수련이지만, 기공이라는 단어 자체는 과거와의 단절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수련에서 ‘미신’ 요소를 제거하고 ‘기’라는 준물질과 건강 개선 효과만 추려냈기 때문입니다.
당시 중국 사회에서 정신적 승화, 종교적 가르침은 타파해야 할 낡은 것이었습니다. 교토대학의 중국철학 전문가 미우라 쿠니오(三浦国雄) 박사는 “(이 시기) 일반적인 기공 수련자들은 어떠한 정신적 목표도 기공과 연결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쿠니오 박사는 당시의 기공에 대해 “건강에도 좋고, 가족과 조국에도 유익하고, 재미도 있으면서 편안하게 사람들과 사교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자 대중을 위한 스포츠”라며 오늘날 미국에서의 요가와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과거 까다롭고 고되며 소수만 접할 수 있었던 기공(수련)을 사상 처음으로 일반 대중이 배워 쉽게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기공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된 중국인들이 너도나도 시작하면서 1980년대 후반에는 전국의 공원 곳곳에서 태극권을 비롯한 기공 애호가들로 넘쳐났습니다. 약 2천 종 이상의 기공에 2억 명 이상이 참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쿠니오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공 스승들이 대거 등장해 과거 소수에게만 전수하던 기공을 보급했다…(중략)…기공의 놀라운 효능과 치유력, 마법 같은 힘은 일종의 초월적인 것으로 여겨졌다…(중략)…사람들은 기공으로 병을 치료하고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큰 희열’을 맛봤다.”
기공 유행 끝 무렵에 등장한 파룬궁
파룬궁 현상은 더 높은 경지에 대한 추구, 그를 위한 자기 수양의 오랜 전통 그리고 격변을 거치며 기공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기까지 중국의 ‘수련 문화’가 겪어온 역사적 시대적 배경 속에서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공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파룬궁을 제대로 연구한 사례는 거의 없었습니다. 사회적 영향에 초점을 맞추거나 중국의 생활 스포츠, 집단행동 차원에서 분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필자가 베이징, 타이완, 미국에서 만나본 많은 수련자에게 파룬궁은 사회적 운동이 아닌 개인 수련의 문제였습니다.
1980년대 중국의 기공 열풍은 건강을 위한 생활 스포츠이자 사교 행위로 출발했지만, 내면의 심연으로 향하는 많은 이들이 ‘안으로 닦는다’고 말하는 심화의 과정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수련을 통해 자기 내면을 들여다 봄으로써 위대한, 신성한 뭔가를 감지했습니다.
1990년대 파룬궁이 등장하자, 중국인들은 이 새로운 기공 수련법에 범상치 않은 요소가 있음을 알아챘는데 그것은 수천 년에 걸쳐 중국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 각인된 높은 경지에 대한 추구였습니다. 그들에게 불가(佛家)의 자기 수양에 신체 단련을 결합한 파룬궁은 마치 수천 년 전 문화가 되돌아온 기분이었습니다.
첫 시작은 여느 기공과 다름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수련했고 통증과 질병이 좀 나아질까 싶어 파룬궁에 입문했습니다. 파룬궁의 치유 효과가 범상치 않다는 것은 1992~93년 건강박람회에서 입소문을 타고 퍼졌습니다.
중국 정부도 파룬궁을 인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1993년 9월 중국 공안부 간행물인 인민공안보는 범죄자들과 맞서 싸운 의인들에게 기공치료를 제공한 파룬궁 창시인의 공로에 감사하며 “그들(치료를 받은 의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놀라운 효과를 봤다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파룬궁은 병 치료와 건강 회복은 수련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며, 이를 목표를 삼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현대의 기공은 대부분 세속적 이익, 즉 기 치료를 목표로 삼았지만, 파룬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파룬궁에 대해 연구한 중국 종교 사학자 데이비드 오운비(David Ownby) 캐나다 몬트리얼대 동아시아연구센터 교수는 “파룬궁의 메시지는 심오하고 도덕적”이라며 파룬궁에서는 건강은 도덕적 상태와 무관하지 않으며, 사람의 고통과 불행은 업보로 인해 초래된다고 가르친다고 분석했습니다. 건강 상태가 궁극적으로는 도덕성과 관련됐다는 아이디어는 도가의 오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오운비 교수에 따르면, 사람들은 파룬궁 수련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면서 일종의 영적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수련은 단순히 기를 연마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훨씬 웅대하고 심오한 것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주의 법칙은 우리 몸의 피와 살처럼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며,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고 평소 생활 속에서 그것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는 발견입니다. 과거 중국의 수련들이 그러했듯 파룬궁도 정신과 육체의 영속적 변화인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음을 약속했습니다.
과거 수련과의 차이점이라면 파룬궁은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약속했다는 것입니다. 파룬궁은 언제든 원하기만 하면 바로 수련할 수 있었고 효과도 즉각적이었습니다. 수련하고 싶은 사람은 자기의 성숙을 위해 기꺼이 노력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됩니다.
파룬궁의 수련 방법은 24시간 온라인을 통해 무료로 제공되며 나이와 체력 수준, 수강료 등 어떠한 조건도 내걸지 않고 있습니다.
오운비 교수는 “파룬궁 수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은 언제나 성선설, 즉 우주 자체가 선하다는 개념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이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발견한 것은 (세상이) 선(善)해지는 것에 헌신할 수 있음을 가장 큰 기쁨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필자는 이 말이 왜 사람들이 자기 수양을 하는지 잘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수련 방법 중 하나인 가부좌는 숙달이 필요한 자세이자 육체적 고통이 따르는 위업인데, 파룬궁 수련자들은 매일 하루 한 시간씩, 이 자세를 합니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거친 생각과 욕망을 억제하는 자제력 수련도 있습니다.
저 역시 이런 수련을 체험해 봤는데 중국 고대 의학자 손사막의 말대로 “체내의 에너지가 바다를 이루듯 충만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내면의 고요함은 자제력과 마찬가지로 모두 꺼내어 보여줄 수는 없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즐거움을 느끼게 합니다.
파룬궁 수련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이자 우주의 상위 법칙인 진선인에 동화되는 과정이며 영혼과 육체를 정화하는 긍정적인 행위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국가의 억압에 맞선 파룬궁 수련자들의 절제된 대응, 인내심, 낙관주의, 끈질긴 집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련자들은 매일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는 사람들이며, 자기 혈맥에 우주가 흐르고 있음을 느끼고 자신의 변덕스러운 마음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중국 문화의 많은 부분을 관통하는 가치이며 방향성입니다. 역사에 이정표가 있다면 이 지점에 ‘평범함을 초월하다’라는 글귀와 함께 세워져 있을 겁니다.
– 매튜 쿠톨로프스키 작성, 파룬인포 편집부 정리









